

틱톡 징글 하나가 TV 광고가 되기까지 — 닥터페퍼(Dr Pepper)
2025년 말, 틱톡 크리에이터 '로미오(Romeo)'가 닥터페퍼를 마시며 즉흥적으로 흥얼거린 짧은 징글 영상을 올렸습니다. 별다른 기획도, 브랜드 협찬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꿈에서 이 아이디어를 훔쳐갈까 봐 충동적으로 올렸다"는 캡션이 달린, 말 그대로 장난에 가까운 콘텐츠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사용자들은 이 징글을 저장하고, 자신의 영상에 재사용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상 브이로그, 요리 영상, 반려동물 콘텐츠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용되며 수천 개 이상의 파생 콘텐츠가 만들어졌고, 누적 조회수는 수천만 회를 넘어섰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닥터페퍼의 대응 방식입니다. 닥터페퍼는 이 밈을 단순한 바이럴 현상으로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관찰했고, 이 징글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브랜드를 대신 설명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로미오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뒤, 이 징글을 가사도, 멜로디도, 목소리도 거의 수정하지 않은 채 전국 TV 광고에 그대로 실었습니다.
소비자의 즉흥적인 장난이 브랜드의 공식 광고 자산으로 승격된 것입니다. 닥터페퍼는 밈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승인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는 브랜드가 메시지의 창작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든 언어를 공식화하는 판단 주체로 움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브랜드 캠페인은 회의실에서 기획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흐름을 제때 포착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합류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 사례를 출발점으로, 지금 마케팅 업계가 향하고 있는 방향과 그 속에서 놓치기 쉬운 기회 영역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트렌드 정리: AI 중심으로 재편되는 마케팅 환경
2025년을 지나며 마케팅 업계의 화두는 단연 AI였습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자동화된 광고 운영, 데이터 기반 퍼널 최적화까지—마케팅 실무의 상당 부분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글로벌 광고 플랫폼들도 AI 기반 캠페인 최적화 기능을 잇달아 도입하면서, 마케터의 역할 자체가 '운영'에서 '설계와 판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입니다.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전략적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흐름이 강해질수록, 업계 담론 역시 AI와 자동화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중 속에서, 실제 소비자 반응과 광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축이 간과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AI 중심 접근의 한계: 효율은 높지만, 문화는 만들지 못한다
AI가 마케팅 효율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AI가 생성한 콘텐츠만으로 소비자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한 결과물입니다. 정제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특정 시점에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적 맥락—이른바 '결'을 포착하고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입니다.
소비자는 점점 더 '만들어진 느낌'의 콘텐츠에 민감해지고 있습니다. 정돈된 광고보다 날것의 경험이 담긴 콘텐츠에 더 높은 신뢰를 보내는 경향은 플랫폼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닥터페퍼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제작된 광고가 아니라, 한 사용자가 즉흥적으로 흥얼거린 노래가 수천만 회의 조회수와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지점에서 밈과 UGC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밈과 UGC, 여전히 유효한 기회 영역
밈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콘텐츠입니다. 특정 이미지, 영상, 문구가 반복적으로 변형·공유되면서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되는 것이 밈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UGC 역시 브랜드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콘텐츠로, 리뷰, 언박싱 영상, 챌린지 참여 콘텐츠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자연 발생형 콘텐츠가 마케팅 관점에서 가치를 갖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소비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습니다. 브랜드 메시지보다 또래 집단의 경험담이 구매 의사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미 다수의 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둘째, 확산 비용이 낮습니다. 밈이나 UGC는 그 자체로 공유 동기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유료 매체비 없이도 빠르게 도달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닥터페퍼 역시 로미오의 징글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별도의 광고비를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브랜드에 '문화적 관련성(Cultural Relevance)'을 부여합니다. 소비자 사이에서 회자되는 밈에 적절히 참여하는 브랜드는 단순한 광고주가 아닌,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리스크와 수명주기: 밈 마케팅의 가장 큰 변수
밈과 UGC 기반 마케팅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영역에는 반드시 인지해야 할 핵심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바로 **수명주기(Life Cycle)**의 문제입니다.
밈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그만큼 빠르게 소비됩니다. 특정 밈이 폭발적으로 퍼지는 시점부터 사용자들의 피로도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까지의 간격은 매우 짧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에서 일주일 이내에 밈의 신선함이 소진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브랜드의 의사결정 속도가 밈의 수명주기보다 느린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밈이 한창 확산될 때 기획을 시작하고, 내부 검토와 승인을 거쳐 콘텐츠를 발행하면, 이미 해당 밈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지난 이야기'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브랜드는 트렌드에 민감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흐름에 뒤처진 존재로 인식될 위험이 있습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밈 활용은 브랜드 이미지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닥터페퍼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타이밍 판단이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징글이 확산되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이 콘텐츠가 일회성 유행인지 반복 소비 가능한 언어인지를 구분했습니다. 단순히 빠르게 올라탄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합류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케터는 밈을 활용할 때적용 시점(진입 타이밍)과 철수 시점(종료 타이밍)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밈에 올라타는 전략만큼이나, 언제 빠져나올 것인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브랜드를 보호하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실무 적용 체크리스트: 밈/UGC 활용 시 점검 항목
아래는 밈 또는 UGC 기반 콘텐츠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 실무자가 참고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입니다.
진입 전 판단 단계
- 해당 밈이 현재 확산 초기 단계인지, 이미 정점을 지났는지 확인했는가?
- 밈의 맥락과 원래 의미가 브랜드 톤과 충돌하지 않는지 검토했는가?
- 해당 밈에 특정 집단에 대한 조롱이나 부정적 맥락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확인했는가?
콘텐츠 기획 단계
- 밈의 원래 구조를 존중하면서 브랜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는가?
- 과도한 브랜딩 삽입으로 밈 본연의 재미를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내부 승인 프로세스를 간소화하여 발행까지의 소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가?
발행 및 운영 단계
- 콘텐츠 발행 후 사용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체계가 갖춰져 있는가?
- 부정적 반응이 감지될 경우 콘텐츠를 신속히 조정하거나 철수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가?
- 밈 콘텐츠의 운영 종료 시점을 사전에 정해두었는가?
사후 분석 단계
- 해당 콘텐츠가 도달, 참여, 전환 등 어떤 지표에서 성과를 보였는지 측정했는가?
- 밈 활용 과정에서 얻은 운영상의 학습 사항을 팀 내에 공유했는가?

결론: AI와 문화, 두 축을 함께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AI 기반 마케팅 도구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효율화와 최적화 측면에서 AI가 제공하는 가치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케팅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관심을 얻고, 그 관심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밈, UGC, 플랫폼 문화 트렌드처럼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콘텐츠의 힘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닥터페퍼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수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아니라, 한 사용자의 즉흥적인 징글이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광고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브랜드가 소비자 문화의 흐름을 관찰하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합류하는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무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AI와 자연 발생형 콘텐츠를 양자택일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강점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조합하는 관점입니다. AI는 효율과 규모를 제공하고, 밈과 UGC는 맥락과 공감을 제공합니다. 이 두 축을 함께 운용할 수 있는 마케터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더 넓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밈과 UGC를 활용할 때는 반드시 수명주기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입 타이밍과 철수 타이밍을 함께 설계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운영 구조를 갖추는 것이 성공적인 활용의 전제 조건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감각
이것이 마케터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