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에게 광고비를 여러 번 지불하고 있진 않나요 — CRM 이야기

광고로 데려온 사람 100명 중 97명이 전환 없이 나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실제로 제가 본 퍼널이 그랬습니다). 이 97명은 어디로 갈까요? 대부분은 그냥 잊혀집니다. 그리고 몇 주 뒤, 우리는 리타겟팅 광고비를 써서 그중 일부를 다시 데려오죠.
가만 보면 이상한 구조입니다. 이미 한 번 돈 주고 데려온 사람을, 돈을 또 내고 데려오는 거니까요. CRM은 이 두 번째 비용을 줄이는 도구입니다.
CRM 마케팅이 뭔가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마케팅은, 광고처럼 매체에 돈을 내고 노출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확보한 접점 — 앱 푸시, 카카오 알림톡·친구톡, 문자, 이메일 — 으로 유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활동입니다. 발송 건당 비용이 광고 CPM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싸거나(앱 푸시는 사실상 무료) 저렴해서, "이미 아는 사람을 다시 움직이는" 용도로는 광고보다 효율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얼마나 실질적인 채널이냐면, 제가 맡았던 플랫폼의 최근 30일 위탁 신청 귀속을 보면 카카오 알림톡이 전체 신청의 19.8%(320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구글 광고(14.2%)보다, 메타 광고(11.1%)보다 컸어요. 광고비를 태우는 채널들보다 메시지 채널이 더 많은 신청을 만들고 있던 겁니다. (물론 여기엔 해석 주의가 필요한데, 뒤에서 다시 얘기할게요.)
시나리오는 '병목 데이터'에서 나옵니다
CRM에서 제일 흔한 실수가 "일단 뭐라도 보내자"입니다. 전체 유저에게 할인 쿠폰 뿌리기 같은 거요. 안 하는 것보단 나을 수 있지만, 제 경험상 효과가 큰 CRM은 반대로 갑니다. 퍼널 데이터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새는 지점을 찾고, 딱 그 지점에 있는 사람에게, 딱 그 지점의 장벽을 허무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실제로 시나리오를 설계했던 과정을 예로 들면, 우선순위를 이렇게 뽑았습니다.
- 1순위: 위탁 안내를 봤는데 신청을 시작 안 한 사람. 퍼널상 96.9%가 여기서 이탈하고 있었으니, 모수가 가장 크고 병목도 가장 큰 지점입니다.
- 1순위(동률): 신청은 했는데 실제 판매까지 안 간 사람. 고객 설문에서 "판매까지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45%로 1위였거든요. 신청 이후가 깜깜이면 사람이 이탈합니다.
- 2순위: 위탁 페이지를 보고 오래 안 돌아온 사람. 설문상 미신청 이유 1위가 "팔릴지 확신이 없어서"(56%)였습니다. 이 사람들에겐 재촉이 아니라 확신을 줘야 하고요.
- 3순위: 조회했는데 장바구니에 안 담은 사람, 첫 구매 후 판매자로 전환 안 한 사람.
핵심은 순위를 감이 아니라 모수 크기 × 병목 크기 × 설문(정성) 근거로 정했다는 점입니다. 이 근거가 있으면 메시지 방향도 저절로 나옵니다. 예컨대 "확신 부족"이 장벽인 사람에게 "지금 신청하세요!"라고 보내봐야 소용없죠. 그래서 메시지 자체를 "내 옷 파세요"(부담을 주는 화법)에서 "당신 옷, 팔립니다"(예상 가격·판매 속도·완료 사례를 보여주는 화법)로 뒤집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같은 발송량이라도 어느 화법이냐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지점이에요.
운영할 때 챙기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굴릴 때 신경 쓰는 실무 포인트를 몇 개 적어두면:
채널을 상태별로 나눕니다. 앱을 설치한 사람에겐 앱 푸시(무료·즉각적), 미설치자나 웹에서만 행동한 사람에겐 알림톡, 이런 식으로요. 같은 메시지를 모든 채널로 다 쏘면 비용도 낭비고 유저도 피곤합니다.
피로도 관리는 시작할 때부터 설계합니다. 시나리오가 쌓이다 보면 한 유저가 조건에 여러 개 걸리는 순간이 옵니다. 우선순위와 발송 간격(예: 한 유저에게 며칠 내 최대 몇 건)을 처음부터 정해두지 않으면, 어느 날 유저가 하루에 메시지 세 통을 받고 알림을 꺼버립니다. 알림 수신 동의는 한 번 잃으면 되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발송마다 식별 파라미터를 심어서 측정합니다. 어떤 시나리오가 실제 전환을 만드는지 모르면 확장할 근거가 없습니다. 시나리오별 UTM이나 캠페인 파라미터를 붙여서 발송→클릭→전환을 잇고, 성과가 확인된 시나리오만 키우는 순서로 갑니다. "CRM 했더니 좋아진 것 같아요"가 아니라 "시나리오 A가 신청 몇 건을 만들었어요"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하나 더 — 진행 상태 알림은 전환용 메시지가 아니지만 이탈 방지엔 꽤 강력합니다. 위탁처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서비스는, 접수→검수→판매중→완료 단계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오래 걸린다"는 불만과 중도 이탈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유저 입장에선 마케팅이 아니라 서비스로 느껴지는 메시지라 피로도 부담도 적고요.
다만 — CRM 성과는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앞에서 알림톡이 신청의 19.8%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 숫자를 그대로 "CRM이 광고보다 낫네, 광고비 줄이자"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대부분의 측정 도구는 last-touch, 즉 마지막에 접촉한 채널에 공을 줍니다. 그런데 알림톡을 받는 사람은 애초에 누군가 — 대개는 광고가 — 데려와서 가입시킨 사람이잖아요. 광고가 처음 데려오고 알림톡이 마지막에 등을 떠민 전환에서, 공은 전부 알림톡이 가져갑니다. 그러니 CRM 숫자가 커 보이는 것의 일부는 광고의 공이 이전된 것이고, 반대로 광고 숫자는 그만큼 저평가돼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보는 편입니다. 광고는 새 사람을 데려오는 도구, CRM은 데려온 사람을 전환시키는 도구.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릴레이 관계라서, 한쪽 숫자가 좋다고 다른 쪽을 줄이는 건 계주에서 앞 주자를 빼는 것과 비슷합니다. CRM이 잘 돌수록 광고의 겉보기 성과는 오히려 나빠 보일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고 채널별 역할을 평가해야, 예산 배분이 안 꼬입니다.
광고비는 그대로인데 전환을 늘리고 싶다면, 새 유저를 더 사기 전에 이미 사둔 유저 명단부터 들여다보는 게 순서일 수 있습니다. 그 명단, 생각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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